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해봅니다.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
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곧 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지 않았을
까? 7일 정도면, 갈 수 있는 길을 왜 40년 걸려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
하셨는가?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오래 걸렸는가? 아니면, 어
떤 이유와 목적 때문에 광야의 40년 훈련이 필요했던 것일까? 어떤 분은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. ‘예수님을 믿고, 가족들과 인사
하고, 이 세상의 일을 정리하는 시간 정도만 갖은 뒤에 가능한 빨리 천국
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?’ 하지만,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삶을
인도하시지 않습니다. 우리가 보기에 지름길이어도 하나님은 때때로 돌
아가게 하시고, 홍해의 난관에 부딪히게도 하시죠. 때로는 배도 고프고,
목도 마르고, 기대가 무너지는 일도 격게 됩니다. 심지어는 만나고 싶지
않은 아말렉같은 원수와 싸우게 되기도 생깁니다.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일까요? 하나님의 불기
둥과 구름 기둥은 고장이 난 것일까요? 하나님의 GPS는 먹통이 된 것인
가요? 다른 분의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듯 하지만, 나의 하나님은 어디에
계시는 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보입니다.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길을 둘러가고, 우회하
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,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. 이 때 불뱀이 나
타나 물고, 많은 사람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고 해독을 길을
찾았습니다. 놋뱀을 만들어 이를 바라보는 자마다 산다는 것이죠. 신약
성경에서 예수님은 이 사건처럼 자신이 놋뱀처럼 들려져서 사람들이 바
라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. 여러 분, 우리는 종려주일과 함께 고난 주간이 시작됩니다. 광야
인생에서 우리의 살 길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. “믿음의 주요 또 온
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”(히12:2]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
고정시키는 연습을 잘 해야 합니다.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
신 우리 주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사는 것, 십자가 바라보면서 우
리의 속상한 것을 치료 받는 것, 십자가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청결
하게 하는 것, 십자가 바라보면서 우리 안에 있는 원망과 불평의 독소를
해독하는 것, 또 십자가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, 이것이 바로
하나님이 이끄시고 목적하는 삶의 의미와 능력입니다. 고난주간에서 십
자가 바라보는 삶은 광야 인생에서 노다지를 캐는 복되고 의미 깊은 시
간이 될 것입니다. |